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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KSDian :: 하늘빛처럼 푸르게 바다빛처럼 깊게 "염색장 정관채"

쪽염색 19-06-04 12:40 131

 

하늘빛처럼 푸르게 바다빛처럼 깊게 "염색장 정관채"

 

 
하늘빛처럼 푸르게 바다빛처럼 깊게
​ⓒ한국예탁결제원 http://ksd.ecatalog.kr/webzine/view.php?wcd=2&wcode=1110


같은 하늘이지만 같은 하늘이 아니다. 같은 바다지만 같은 바다가 아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자연의 푸른빛. 그 오묘한 색감을 선조들은 ‘쪽빛 하늘’, ‘쪽빛 바다’라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정관채 염색장의 삶은 바로 그 쪽빛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장인의 땀과 정신을 담은 쪽빛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천 년의 세월을 오간 듯 마음이 황홀했다.


운명처럼 찾아온 작은 쪽씨

고즈넉한 시골길을 따라 정관채전수교육관에 다다랐다.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정관채 염색장이 ‘청출어람’을 기대하며 후학에게 기능을 전수하는 자리다. 쪽 염색은 쪽에서 추출한 염료로 옷감이나 종이 등을 물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과거 궁중에 염색을 전담하는 장인이 따로 있었을 만큼, 쪽 염색은 남다른 가치와 기술을 인정받는 분야였다. 한지에 물들인 쪽빛은 천 년을 간다고 해 ‘천 년의 색’으로도 불린다. 정관채 염색장은 쪽 재배를 비롯해 침전과 발효, 석회 생산, 쪽물 염색 등 전 과정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 뿐만 아니라 염색 기량 측면에서도 우수한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관채 염색장이 나고 자란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샛골마을은 역사적으로 목화 재배가 활발했던 지역이다. 좋은 옷감이 나오니 자연히 염색과 직조가 발달했다. 특히나 쪽은 과거 범람이 심했던 영산강 주변에서 수해 영향 없이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나라 쪽 염색의 명맥이 끊어지고 만다. 하지만 스무 살 청년이던 정관채 염색장이 작은 쪽씨 하나를 건네받으면서, 비로소 우리나라 쪽 염색의 생명줄이 다시금 살아났다. 민속문화 복원을 위해 애썼던 예용해 선생이 1978년 당시 목포대학교 미대에 재직 중인 박복규 교수에게 쪽씨를 주면서 ‘우리나라에서 쪽을 되살릴 수 있는 곳은 나주’라는 당부를 전했던 것. 샛골마을 출신으로 미대에 다니고 있던 정관채 염색장은 그야말로 적임자였다.


“쪽씨를 건네받았을 때 그 일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쪽 재배를 하려면 농사 지식이 필요하고, 염색을 하려면 미적 감각도 있어야 했죠.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저 말고 달리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늘빛처럼 푸르게 바다빛처럼 깊게
ⓒ한국예탁결제원 http://ksd.ecatalog.kr/webzine/view.php?wcd=2&wcode=1110

 

고된 노동을 극복한 40년의 소명

대대로 쪽 염색을 해왔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경험이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쪽을 키우고 염색을 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부임한 이후로도 쪽 염색을 향한 그의 열정은 이어졌다. ‘번듯한 직장이 있으면서 사서 고생한다’는 주변의 간섭도 적지 않게 들었지만, 이 땅에서 다시는 쪽빛을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사명감이 자꾸만 그를 붙들었다. 다행히 은행에 다니던 아내도 그의 생각을 지지해주며, 일손을 보탰다.
“내 손을 보세요. 일로 다져진 손이죠. 어릴 때도 마을에서 ‘일꾼 중 상일꾼’이라 불렀어요. 어렸지만 어른 못지않게 일하며 노동으로 단련됐죠.”


쪽 재배가 까다로운 까닭은 사계절 중 가장 더울 때 수확하기 때문이다. 삼복더위가 지나면 꽃이 피는데, 꽃이 핀다는 것은 잎에 있던 영양이 꽃으로 이동한다는 의미. 그래서 쪽은 꽃이 피기 전인 6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수확한다.
“낮에는 더워서 몸도 못 가눌 정도예요.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고, 해가 넘어간 후 남들이 자고 있을 시간에 또 일해야 하죠. 방학이 없었으면 이 일을 이어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무더운 날씨에 쪽을 수확하다 문득 정신이 아득해져 왼손 약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염료에 물든 그의 손톱을 썩었다고 오해한 의사가 미세접합수술을 하며 멀쩡한 손톱을 뽑아버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쪽에서 얻을 수 있는 색소는 중량의 불과 0.02%. 이마저도 온전히 염색되는 게 아니기에, 우리가 흔히 보는 쪽으로 염색한 옷감을 만들려면 상당한 염료가 필요하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결과가 너무도 미미하기에 사실상 경제적 논리로는 접근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효율을 극대화한 인공 염료가 가득한 세상. 더욱이 쪽 염료를 만드는 과정은 기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쪽빛은 땀에서 비롯하기에, 그는 쪽 염색을 시작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구슬땀을 흘리며 쪽을 심고 수확하며 염료를 생산하는 고생스러운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쪽빛으로 이어가는 장인의 삶

염색장의 기능은 기록으로 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롯이 몸으로 부딪혀 경험으로 쌓고 또 쌓아야 한다. 그는 전수관 활성화사업을 통해 쪽 염색을 배우려는 이들에게 무료로 쪽 염색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주말이면 쪽 염색을 배우려는 이들로 전수관은 북적댄다. 대학원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둘째 아들도 대를 이어 쪽 염색을 익히는 중이다.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시대지만, 색의 중요성은 영원합니다. 색은 다른 분야와 연계하고 협업하며 확장할 수 있는 여지도 많아요. 40년 전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이걸로 먹고 살 수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찾는 곳이 많습니다.”


천연염색 공개강좌를 비롯해 천연염색 전시회와 시연회, 여러 문화사업의 자문역 등 그를 필요로 하는 자리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는 당대에 개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보다, 후대까지 쪽 염색을 이어가는 데 더욱 관심을 쏟고 있다. 쪽 염색이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까지 확대되기를 기대하면서.
친환경이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쪽 염색의 장점은 더욱 가치를 발한다. 쪽에서 얻을 수 있는 인디카인 색소를 인공적으로 만들려면 상당한 환경 파괴가 일어난다. 하지만 쪽 염색은 자연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무해하다. 그가 구상한 쪽바지 프로젝트도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이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독일 수도원에 있던 조선 시대 갑옷이 100년 만에 귀환했더군요. 그 갑옷의 내부가 쪽으로 칠해진 걸 봤어요. 예로부터 문관은 적의를 입고 무관은 청의를 입었는데요. 과거에는 씻을 기회도 적고 질병에 취약한데 쪽으로 방충ㆍ방풍ㆍ항균 효과를 얻었던 겁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우리 생활도 무관하지 않아요.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합니다.”
긴 시간, 쪽과의 인연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그는 다채로운 쪽빛을 담은 작품을 찬찬히 보여주었다. 익숙한 노랫말에 나오는 ‘세모시 옥색 치마’의 옥색도, 얼핏 검정이라 착각할 법한 짙푸른 암청색도 모두 쪽에서 비롯했다. 하늘처럼 푸르고 바다처럼 깊은 쪽빛의 매력이 이런 것일까. 쪽의 녹색 잎에서 더 푸른색이 나온다고 해서 생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던 시간. 하늘처럼 푸르고 바다처럼 깊은 쪽빛의 따사로운 햇볕 사이로 일렁이는 쪽빛 옷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의 소명을 따라 이어갈 다음 세대 장인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솟았다.


하늘빛처럼 푸르게 바다빛처럼 깊게 ⓒ한국예탁결제원 http://ksd.ecatalog.kr/webzine/view.php?wcd=2&wcode=1110

 

 


글 정라희 · 사진 이성훈
 

 

 

출처:: http://ksd.ecatalog.kr/webzine/view.php?wcd=2&wcode=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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